이문영, <웅크린 말들> 중 caffeine

1.

“언어는 때로 선동이었고, 자주 기만이었다. 과거 그를 ‘산업전사’라고 칭했던 언어는 현재의 그를 ‘노가다’라고 불렀다. 석탄 증산을 ‘애국’이라며 독려했던 언어는 어느 순간부터 감산과 폐광이 ‘합리화’라며 말을 바꿨다. 언어를 정의하는 권력은 그와 동료들의 정체성을 극단으로 뒤바꾸며 언어를 감염시켰다.”

“동원탄좌가 죽은 뒤 광부들은 시들고 강원랜드는 활짝 피었다. ‘증산’도 정부 정책이었고 ‘폐광’도 정부 정책이었다. 농자는 한 번도 ‘천하지대본’이었던 적이 없었고, 광부는 한 번도 ‘새마을의 주역’이었던 적이 없었다. 정치가 언어를 소처럼 부릴 때 그들은 소처럼 일만 하다 삭아 갔다. 강원랜드는 폐광을 수용할 수밖에 없는 탄광 주민들이 대정부 투쟁 끝에 얻어낸 마지막 미래였다. 더러운 탄재 연기 속에 깨끗한 카지노를 세울 수밖에 없다는 말에 광부들은 폐광에 동의했다. 그들이 만든 미래에서 강원랜드 정규직이 된 광부는 한 명도 없었다. 그들이 진폐증으로 죽고, 무직자가 되고, 공장을 찾아 떠날 때, 외지인들이 들어와 러브호텔을 세우고, 땅 투기를 하고, 강원랜드 정규직이 됐다.”

2.

“밝은 것이 모든 것을 밝히 보여 주는 것은 아니었다. 지나치게 밝으면 있는 것이 보이지 않을 때도 있었다. 생산직 여성 노동자들이 실밥을 밥처럼 먹으며 만든 옷을 판매직 여성 노동자들이 자신의 감정까지 덤으로 포장해 팔았다. 좁고 탁한 저임금 노동이 널찍하고 청정한 저임금 노동으로 가려졌다.
강명자는 독산동에서 ‘노동자들이 몰락해 가는 시간’을 읽었다. 그가 객공이 되는 과정은 한국 봉제 산업이 꼬리를 무는 하청으로 재편되는 흐름 위에 있었다. 국내에 자체 생산 시스템을 가진 유명 브랜드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생산 공장은 가난한 국가로 내보내고 국내에선 값싼 객공을 활용했다. 젊어서 미싱 박사로 신나게 페달을 밟았던 ‘2단지 날라리 언니’가 객공이 되어 만든 옷이 공단 안 마리오사거리 아울렛에서 팔렸다. 그의 구속이 촉발한 ‘동맹’과 ‘연대’의 공간이 화려해진 디지털단지엔 남아 있지 않았다. 라인을 해체에 시급 객공에게 생산을 떠넘기는 ‘디지털 구조’에선 오직 각자도생만이 회칼 앞 활어처럼 펄떡였다. 첨단은 뾰족하고 날카로운 끝에 있었다.
드르륵 드르륵.
구로공단을 증오하면서도 강명자는 공단에 기대 살았다. 노동의 추락을 겪으면서도 그가 생계를 구한 땅은 공단 옆 독산동이었다.
드드 르르르 륵륵.
미싱 바늘이 강명자의 청춘을 콕콕 찍어 구로에 박음질했다. 떠나고 싶어도 떠나지 못하도록 구로에 꿰매 버렸다. 그 많던 구로공단 여공들이 지금 어떻게 사냐고 그에게 묻는 사람들이 있었다.
다 어디 있냐고? 여기, 이렇게, 나처럼 있지.
드, 르, 드, 륵, 르드, 륵륵, 륵르드.
강명자의 미싱이 툭툭 끊겼다.

3.

“이 사회는 나의 감정에 가격을 매기며 나의 태도를 상품으로 판매합니다. 나의 노동을 고용한 기업은 나의 감정과 생각까지 고용하고 관리합니다. 노동자를 감시하는 고객은 자신의 일터에서 누군가의 감시를 받는 노동자가 되고, 고객에게 감시받는 노동자는 다시 다른 노동자를 감시하는 고객이 됩니다. 고객이 노동자를 감시하게 만드는 사회는 자기가 자기를 감시하는 거대한 롤플레이를 하고 있습니다. 소비의 이념은 노동을 할퀴며 증식하는 자기 파괴의 무한궤도 속에서 자랍니다.”

“새는 하늘을 날기 위해 알을 깨고 계란은 고기로 먹히기 위해 닭이 된다. 새의 알은 하늘이나 고층에 집을 갖지만 계란은 낮은 땅이나 집단 축사에서 치여 뒹군다. 계란인 나는 높은 새의 둥지에 에어컨을 단 뒤 낮은 닭장으로 내려와 퇴화된 날개를 쉰다. 날개 가진 생물이 공중으로 던져지는 것을 추락이라 부르지 않는다. 날 수 있어야 목숨을 구할 수 있는 곳에서 날 수 없어 추락하는 계란들이 지구를 식힌다. 계란이 바위에 부딪혀야 하는 현실은 앞으로도 가혹할 것이다.
예정된 길이 있다. 지구는 더욱 자주 뜨거워질 것이고, 에어컨은 더욱 자주 고장날 것이며, 나는 더욱 자주 매달릴 것이다. 하늘 나는 새가 될 순 없어도 땅으로 곤두박질치는 세계만큼은 막아야 한다고 계란들은 믿는다. 그 믿음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나라에선 하늘이 계란들을 낙엽처럼 떨어뜨릴 것이다.”

4.

“그 바다는 공포였다.
그 바다에서 죽어 간 사람들이나, 그 바다에서 살아난 사람들이나, 그 바다에 가족을 빼앗긴 사람들 모두에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던’ 그 바다는 격렬한 공포였다. 해경도, 정치도, 행정도, 언론도 믿지 못한 채 공포로 떨었던 가족들은 그 바다 너머에서 곧 보게 될 것이었다.
참사 당일 겪은 그들의 공포를 씹고, 참사 이후 흘린 그들의 눈물을 핥으며, 날마다 덩치를 키우는 ‘생물로서의 공포’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국민을 보호하는 데 실패한 국가가 국민을 보호하지 못한 이유를 밝히라는 요구에 모든 국가 기능을 동원해 맞설 때, 그들 앞에서 공포는 괴물처럼 자라났다.”

“구조된 사람과 구조되지 못한 사람이 있었다. 살아 돌아온 사람과 바다에 묻힌 사람이 있었다. 구조하지 못한 이유를 묻는 사람과 구조하지 못한 이유를 묻으려는 사람이 있었다.
왜 바다에 묻혀야 했는지를 묻는 세월호 가족들을 상대로 국가는 ‘거대한 슬픔’을 ‘거대한 혐오’로 전환시키느라 일사불란했다. 거처를 알 수 없던 국가는 그렇게 모습을 드러냈다.
사람과 사람의 마음이 모여 흘러가는 방향을 보면 좋은 세계와 나쁜 세계의 차이를 알 수 있었다. 이 슬픔을 담아낼 언어도, 이 분노에 변명할 염치도, 한국의 정치와 행정과 언론은 갖지 못했다. 보이지 않는 국가는 사람의 총합으로서 가시화됐다. 사람 가운데가 아니면 국가가 있어야 할 곳은 없었다.”

5.

“애써 말해야 하는 삶들이 있다. 말해질 필요를 판단하는 것이 권력이고, 말해질 기회를 차지하는 것이 권력이다. 말하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권력과 거리가 먼 존재일수록 말해지지 않는다. 말해지지 않는 것들이 말해지도록 길을 내는 언어가 절박하다.”

“말해지지 않는 존재들로부터 멀어지는 말하기 방식은 나, 당신, 우리, 이 세계 모두로부터도 멀어질 것이다. 세기적 사건의 충격보다 끊어낼 수 없는 그저 그런 일상이 쌓아 온 이야기의 전복성을 믿는다. ‘우리’의 편안한 일상을 지탱하는 ‘우리’의 가혹한 현실을 발견하는 것이 이 시대 언어와 문자의 최전선이다.”

- 이문영, <웅크린 말들>, 후마니타스,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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